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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몇개 / 고은

난자기 2017. 8. 1. 14:17

지난 여름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옳거니!
새벽까지
시린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으며 여물었나니

-고은, 열매 몇 개 -





1938년 하위징아는 자신이 출간한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은 놀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이 주장은 문화로 인해 놀이가 만들어졌다는 기존 설을 뒤집는 이론이라 세상을 경악케 했다.

즉 유희하는 인간이 더 창의적이 될 수 있었고 오늘날 문명의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이다


그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의미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추상적이고 난해한 단어 '행복'에 대한 개념을 누가 명확하게 정의할수 있겠는가? (실제로 수많은 '행복론' 들이 정의되고 있지만)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놀때는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어릴적에 마당에 풀어 키우는 닭들을 생각해 보라

날이 새면 어디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닭들

모이를 쪼기도하고, 싸우기도 하고, 사랑행위를 하기도 하며 하루 종일 놀이를 한다

그 중에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놈이 있는데

그 놈은 몸에 병이 있거나 집안에 문제가 있는 놈이다.

그 닭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잘 놀고 즐거우면 행복하다는 가설이 참이면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공식에 대입하면 잘 노는것이 곧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중 행복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

잘 놀지 못하고, 잘 놀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성인들이 즐겁게 신나게 놀수 있는 놀이가 있는가?

술마시기, 노래방가기, 고스톱, 게임(?), .... (나머지는 본인들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성인들이 노화되어 노인이 되면 상황은 더 참혹해진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그들에게 놀이란 거의 없다

그래서 수많은 노인들이 홀로 외로이 고독사한다

호모 루덴스가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노는 법을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노는 기술만큼 중요하지만 소홀히 대접받는 기술은 없다

우리는 그동안 일하는 기술만 몸에 체득 되었을 뿐, 호모루덴스의 DNA는 퇴화되었다

날개는 달렸으되 날지 못하는 병든 닭이 딱 우리의 분신이다


"지난 여름내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여름에 땡볕 불볕이 놀지 않고 밤에 어둠이 졸았다면

여기 새빨간 찔레열매는 없고 찔레꽂도 붉게 피지 않은다


-백난작-




자전거 탄 풍경 -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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