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춘, 지렁이ㅡ

난자기 2020. 9. 10. 10:32

 

깨진 화분의 흙을 쏟았더니
지렁이 한 마리 나와 꿈틀거린다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갑자기 밝은 빛에 몸 둘 바를 몰라
도망도 가지 못한다

출렁거리는 몸짓과
앞뒤를 모르는
뒤엉킨 시간이 눈앞에서 꿈틀거렸다

직립으로 분주하던 시간들
칸칸이 혼자 살고 있다는 생각, 버렸다
다시 화분에 지렁이를 넣어주고 잘 덮어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흙 속에 숨겨 두었다

 

ㅡ임재춘, 지렁이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