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김춘수 ㅡ

난자기 2020. 12. 25. 19:14

 

촛불을 켜면

면경의 유리알, 의롱의 나전

 

어린것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차차 촉심이 서고 불이 제자리를 정하게 되면

불빛은 방안에 그득히 원을 그리고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윤곽 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있다.

들여다보면 한바다의 수심과 같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할 따름이다

 

 ㅡ김춘수, 어둠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