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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희덕ㅡ

난자기 2021. 8. 11. 12:25

우리 집에 놀러 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 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ㅡ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