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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 김수우

난자기 2022. 1. 7. 22:39

문어는 하나의 추상이다
발이 많은 한 방울 눈물이다
깜깜한 바다에 떨어진 신의 발바닥이 숙성한 듯
부드러운, 단호한

신은 애초 가난이었는지 모른다
배고플 땐 자기 살을 뜯으며 제 피부로 변장술을 읽히며 빨판으로 미로를 통과하며 단백질 유전자를 확보하며 잘린 뒷발로 세계를 키우며 푸른 피로 심장을 세 개나 만들며 심연을 길었을 것이다 여덟 개 맨발은 출구를 향해 자꾸 길어졌을 것이다

길을 더듬던 뜨거운 빨판으로
청동문짝 같은 바다를 끌었을 것이다 빨판은 누군가 판각한 외딴집 한 채, 한때 고생대 곤충이었던 한때 난해한 방언이었던 꿈이 들어앉았으니, 한번도 치명적이 되지 못한 억년 몽유병이 멸종을 견디고 있었구나, 억울해라 억울한 사랑이구나

눈물은 영원의 살집
자갈치 붉은 대야에 엎드러진
커다란 문어 앞에서
가난이 진화하는 방식을 본다
삼엽충을 닮은 험준한 적막들, 모든 틈을 비비며
아직 팽팽하다

하루하루 희미한 지옥을 걸어
톱날처럼 깊은 하루를 걸어

살아남은 심장마다 문어가 진화하고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