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마리가 / 최승자

난자기 2016. 2. 15. 22:27




빙긋이 웃고 있는 나무 한 그루, 그 위에서
한 마리 새가 이 의식에서 저 의식으로
깡총거리며 놀고 있다

 
      - 새 한 마리가, 최승자






흔들지마, 사랑이라면 이제 신물이 넘어 오려 한다
내 잔가지들을 이제 흔들지마
더 이상 흔들리며 부들부들 떨다 치를 떠느니,
이젠 차라리 거꾸로 뿌리 뽑혀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프라하에서 한 집시 여자가, 운명이야, 라고 말했다
운명따윈 난 싫어, 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었다
아름다움이 빤빤하게 판 치는 프라하, 그러나 그
뒤 편 숨겨진 검은 마술의 뒷골목에서 자기 몸보다
더 큰 누렁개를 옆에 끼고 땅바닥에 앉아
그녀는 내 손바닥을 읽었다
난 더 이상 읽히고 싶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씌여진 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운명이라 말하지 마, 흔들지 마
네 바람의 수작을 잘 알아, 두 번 속진 않아
새해, 한겨울, 바깥바람도 내 마음만큼 차갑진 않다
내 차가운 내부보다 더 차가운 냉수 한잔을
마시며, 나는 차갑게 다시 읊조린다.

흔들지 마, 바람 불지 마, 안그러면
난 빙하처럼 꽝꽝 얼어붙어 버리겠어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하나씩 오고 가면서
내게 수상한 바람 소리들을 보낸다
그때마다 나는 접시 깨지는 소리로 대답한다
"접근하면 발포함"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나는 안다
그것은 외부를 향한 게 아닌,
내부를 향한 폭탄이다


- 흔들리지마 , 최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