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꽃 피다 / 마경덕

난자기 2016. 3. 8. 12:09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후다닥 무언가 뛰쳐나간다.
가슴을 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꽃이다.

까만 봉지 속이 환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묵은 무
한 개 꽃자루를 달고 있다.

베란다 구석에 뒹굴던 새득새득한 무.
구부정 처진 꽃대에 연보랏빛 꽃잎 달렸다.
참말 독하다.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꽃을 피웠다.

손에 얹힌 무,
몸집보다 가볍다.

척, 제 무게를
놔버리지 못하고
주저주저 망설인다.

봄이 말라붙은
무꼬랑지 쥐고
흔들어댄 모양이다.
창을 넘어와
봉다리를 풀고 무를 부추긴 모양이다.

눈을 뜨다 만 무꽃.
여기가
어디라고 덜컥,
꽃이 되었던가.
어미 살을 파먹고
꽃이 된 무꽃.
쪼그라진 젖을
물고 있는 무꽃.

ㅡ마경덕, 무꽃 피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