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가져갔다 / 이정록

난자기 2016. 3. 16. 17:59




누구나 죽지
똥오줌  못 가리는
깊은 병에 걸리지
어미에게 병이 오는 걸
걱정마라
개똥 한 번 치워본 적 없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지극정성으로 몸과 마음
조아리다보면 감기가 올 게다
감기가 코를 가져가겠지
냄새만 맡을 수 없다면
넌 내 사타구니에서
호박꽃이나 고구마 밥을
꺼내어 신문지에 둘둘
감쌀 수도 있을 게다

나 때문에 독감에 걸렸구나
삼우제 끝나면 씻은 듯이
나을 거다
잠시 달아났던 코는
새것이 되어서 황토무덤
앞에서 킁킁대겠지
네 콧구멍에서
새 봄이 시작될 거다
그게 회춘이란다
가족이란 언제든지
코를 주고받는 사이지
새끼가 여럿이다 보니
어미코는 누가 베어간 것
같구나
먼 훗날 너도 이렇게 말하렴
잠시 코를 베어갔다가
돌려주겠노라고
곧 봄이 돌아올 거라고

ㅡ이정록, 코를 가져갔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