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아가씨 / 서안나

난자기 2016. 9. 6. 11:36


야야
장사이기
노래 쪼까 틀어봐라이
그이가 목청 하나는
타고난 넘이지라
동백아가씨를 틀어 불면
농협 빚도
니 애비 오입질도
암 것도 아니여
뻘건 동백꽃
후두둑 떨어지듯
참지름 맹키로
용서가 되불지이

백여시같은
그 가시내도
행님 행님 하믄서
앵겨 붙으면
가끔은 이뻐보여야
남정네 맘 한 쪽은
내삘 줄 알게되면
세상 읽을 줄
알게 되는 거시구먼

평생
농사 지어봐야
남는 건
주름허구 빚이제
비오면 장땡이고
햇빛나믄 감사해부러
곡식 알맹이서
땀냄새가 나불지
우리사
땅 파먹고 사는
무지랭이들잉께
땅은
절대 사람버리고
떠나질 않제
암만 서방보다 낫제

장사이기 그 놈
쪼까 틀어보소
사는 거시 벨것이간디
저기
떨어지는 동백 좀 보소
내 가심이
다 붉어져야

시방 애비도 몰라보는
낮술 한 잔 하고 있소
서방도
부처도
다 잊어불라요
야야
장사이기
크게 틀어봐라이
장사이기가
오늘은
내 서방이여

ㅡ서안나, 동백아가씨ㅡ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 서안나, 등 -



서안나 시인

1965년 제주출생
1990년 「문학과비평」등단.
1991년 「제주한라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가작.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플롯속의 그녀들」
현재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중
「현대시」「다층」「시산맥」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