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개같은 가을이 / 최승자
난자기
2016. 9. 7. 11:57
개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들어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있는 기억의 마수가
한 없이 말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ㅡ최승자, 개같은 가을이ㅡ
그리하여
어느 날,
가을이 전한다
오체투지하라
무릎,
두 팔과 머리로
노래하라
이미
삶은
강이고 바다이니...
노래하는 아침! ...작자기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흰 똥을 갈기고
죽어 삼일간을 떠돌던 한 여자의 시체가
해양 경비대 경비정에 걸렸다.
여자의 자궁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다.
(오염된 바다)
열려진 자궁으로부터 병약하고 창백한 아이들이
바다의 햇빛이 눈이 부셔 비틀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파도의 포말을 타고
오대주 육대양으로 흩어져 갔다.
죽은 여자는 흐물흐물한 빈 껍데기로 남아
비닐처럼 떠돌고 있었다.
세계 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간 아이들은
남아연방의 피터마릿츠버그나 오덴달루스트에서
질긴 거미집을 치고, 비율빈의 정글에서
땅 속에다 알을 까놓고 독일의 베를린이나
파리의 오르샹가나 오스망가에서
야밤을 틈타 매독을 퍼뜨리고 사생아를 낳으면서,
간혹 너무도 길고 지루한 밤에는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언제나 불발의 혁명을.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오염된 바다)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최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