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처럼 / 신동엽

난자기 2016. 11. 17. 22:24

들길을 떠가는
담배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매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ㅡ신동엽, 담배연기처럼ㅡ





시인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69년 간암으로 타계할때까지 39년의 짧은 생을 살다 갔다. 살아 생전에 <신동엽전집>과 서사시 '금강(錦江)'이 실린 합동시집 등 단 두 권만을 출간한 그가 평생 화두로 삼은 주제는 '민족적 자존과 반외세'였다. 시인 신경림은 '외세, 분단, 민주화 등의 문제를 처음 시에 끌어들인 것이야말로 신동엽 시의 가장 큰 미덕이며 그의 시가 영원히 살아 있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p78)

신동엽의 이런 문학적 성향은 많은 부분 시인의 생체험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해방공간에서의 극심한 좌우대립과 한국전쟁체험, 그리고 4.19와 5.16을 겪으면서 형성된 명징한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의 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쟁체험은 시인의 문학적 성향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를 젊은 나이에 요절케 만드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동시에 남북진영에 가담했던 일이나-그러나 시인의 사상적 성향은 오히려 아나키즘에 더 가까워 보인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이른바 '국민방위군 사건'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섭식한 날 게 때문에 간디스토마균에 감염되고 훗날 간암으로 발전,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신동엽은 역사와 현실의 허구성을 자각하고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통해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숨쉬며 살아가는 세상을 갈구하였다. 오롯이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런 그였기에 사람을 옭아매는 그 어떤 억압구조도 용인할 수 없었다. 이 점은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와 장편 서사시 '금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시인은 갑오농민전쟁과 4.19 혁명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읽고 이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구조의 철폐를 강하게 희망하였다. 평생 '민족적 자존과 순수'를 강하게 노래하면서도 결코 배타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를 일러 기꺼이 '민족시인'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시인의 정신이 7~80년대를 거치면서 민중의식의 자각으로 이어져 이른바 민족문학, 민중문학의 전거로 작용한 사실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