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 김수영

난자기 2016. 12. 9. 11:36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ㅡ김수영, 눈ㅡ




기침은 우리 몸의 중요한 방어작용의 하나이며, 가스, 세균 등의 해로운 물질이나 다양한 이물질이 기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흡입된 이물질이나 기도의 분비물이 기도 밖으로 배출되도록 하여 항상 기도를 깨끗하게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안그래도 지금 온 나라가 기침을 하고 있다
더런 것을 내뱉기 위한...朴作戇


죽지 않기 위해서 해타(咳唾)를 해야한다.

내 몸에 유해한 침과 가래는 몸 밖으로 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이 든다. 병이 든지도 모르고 시름시름 시들어간다.

해타는 본래적 삶에 대한 의지다.

배에 힘을주고 혈압이 다소 올라가더라도 카악~~하고 밷어내야 할 부조리다. 

눈은 살아있다.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살아있어야한다..

나의 존재가능성은, 양심은 살아있어야 한다.

눈들은 살아남아서 지켜보고있다.

그대가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뱉어내는지...

시인이여 침을 뱉어라.

민중이여 가래를 뱉어내자. 

광화문에서, 국회의사당에서 벌겋게 침을 뱉어내자.. 白卵作






명동의 한 술집, 안주는 사회와 정치 얘기. 한 남자가 현 정권에 대해 비판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이를 막아섭니다. 

이에 저지를 당한 남자가 분개하며 소리칩니다.


 "아니, 자유 국가에서 욕도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오. 이 썩어빠지고 독재나 일삼는 늙은 독재자에 대해 왜 말을 못한단 말이오." 

이 남자는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시인 '김수영' <풀>, <눈>, <폭포> 등의 시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입니다. 

는 1921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 후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정권 아래 문학 활동을 이어갑니다. 

초창기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의 시를 주로 썼던 김수영은 1960년 본격적인 사회참여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부정선거에 반대 시위를 하다 한 고등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번진 4.19 혁명. 

이를 계기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지만 곧 이어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합니다.

통행 금지, 언론 통제, 문학과 노래 검열...그 누구도 불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어두운 세상에 울려퍼졌던 시 한 구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야경꾼에게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 11. 4) 中 -      



당시 원고료 몇 푼으로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가난한 시인 김수영. 

그는 자신이라는 작은 존재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데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했습니다. 

본인이 '비겁하다'며 평생 고뇌했던 김수영. 그는 1968년 불의의 교통 사고를 당해 48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한반도는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인을 잃었다." - 시인 신동엽


사후에 그의 시는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키며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됐습니다. 민음사에서는 1981년부터 '김수영 문학상'을 매년 수여하고 있습니다.


시도 시인도 시작(詩作)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 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 산문 <詩여, 침을 뱉어라> 中 - 


그가 평생 괴로움 속에서도 울부짖다시피 '뱉어낸' 시들이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양심'입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