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공양 / 오세영

난자기 2016. 12. 22. 10:22

햇빛 공양 받으려고
미닫이 열자
그새
내 방안을 엿보았는지
까마귀 한 마리
잽싸게 날아들어
내 원고지 칸의 글자들을 몽땅
쪼아 먹는다
저리 가거라
저놈의 까마귀, 훠어이
날아간 까마귀는
헐벗은 귀룽나무 가지 끝에 앉아
먼 하늘을 바래고
뒤쫓던 나는
얼어붙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헐벗은 나뭇가지를 바래고

ㅡ오세영, 햇빛공양ㅡ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왔다가는 잎사귀
두고 온 가지 끝이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