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의 시간 / 권영준

난자기 2017. 3. 22. 15:17




냇물이 몸을 낮추면
숨어 숨쉬는 작은 생명이
환히 보인다
수천 년을 흐르는 물살에
죄를 씻고도
아직도
더 씻어낼 게 있어
세찬 죽비를 온몸으로
견디는 돌맹이들,
저 무지가 점점 자라
단단한 신념이 되기까지
이빨 앙다문 바위의 입은
오랜 세월 제 몸을 통과해간
석문의 시간을 기억한다
물살에 군살이 깎일 때마다
점점 자라
끝끝내 박힌 자리에서
외눈 부릅뜨고
새겨 넣은 무욕의 무늬,
냇물이 몸을 더 낮추면
거친 세파에
침묵으로 새겨지는
내 마음의 맑은 무늬

ㅡ권영준, 석문의 시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