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난자기
2017. 4. 19. 10:36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
슬픔의 평등한 얼굴
무관심한 너의사랑
흘릴줄 모르는 너의 눈물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
슬픔은 기쁨보다 친숙하다
슬픔은 평등하다
슴픔은 힘이 있다
슬픔은 사랑보다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