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미사일 / 김영승

난자기 2017. 5. 9. 10:10





"나는 이제
느릿 느릿 걷고 힘이 세다

비 온 뒤
부드러운 폐곡선 보도블록에 떨어진 등꽃이
나를 올려다보게 한다

나는 등나무 페르골라 아래
벤치에 앉아 있다
자랑스런 일이다

등꽃이 상하로
발을 쳤고
그 휘장에 가리워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미사일 날아갔던 봉재산엔
보리밭은 없어졌고
애기똥풀 군락지를 지나
롤러스케이트장 공원
계단밑 노인들 아지트는
멀리서 보면 경회루 같은데
내가 그 앞에 있다
명자꽃과 등꽃과
가로등 쌍 수은등은
그 향기를
바닥에 깐다
등꽃은
바닥에서부터 지붕까지
수직으로 이어져
꼿꼿한 것이다
허공의 등나무 덩굴이
반달을 휘감는다

급한 일?
그런 게 어딨냐"

 - 김영승, 흐린 날 미사일 -


"우갈좌등(右葛左藤)" 이란 말이 있는데, 우측으로 감아도는 것은 칡이요, 좌측으로 감아도는 것은 등나무란 뜻의 사자성어이다

칡은 초가을에 보라색 꽃이 핀다. 칡은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뿌리는 갈근이라 하여 칡즙을 만들어 마시고, 예전에는 갈분으로는 떡, 국수 등을 만들어 먹으며 춘궁기의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다.

칡넝쿨의 속껍질은 갈포를 만들어 옷을 짓기도 했다. 칡꽃은 잘 말려서 차를 만들면 향긋한 칡꽃 향을 맛볼 수도 있다

등나무는 오월경에 아래쪽을 향해 보라색이나 흰색 꽃을 피운다. 반면 칡은 초가을부터 하늘을 향해 보라색 꽃을 피운다.

등나무는 학교나 공원에서, 칡은 시골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칡과 등나무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둘 다 유용한 식물이며,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등나무 꽃도 차로 만들어 마시고, 씨앗은 볶아 먹기도 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칡과 등나무가 약재로 쓰일 땐 그 효과는 다르다.

칡은 숙취해소에 좋고 해열 등에 효과가 있지만, 등나무는 장(腸)에 좋고 관절염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칡(葛)과 등(藤)나무와 갈등(葛藤)으로 함께 얽혀 있기도 하다.

국어사전에서 갈등(葛藤, Conflict)이라는 뜻은 "등나무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목표이해관계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상태" 라고 되어 있다.

자연상태에서는 칡과 등나무가 사는 곳이 달라서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고 하며, 설혹 감아 도는 방향이 서로 다른 식물이 같은 숲에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공존하여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