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는 것 / 안도현

난자기 2017. 5. 25. 10:47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 버스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 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 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던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는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안도현, 열심히 산다는 것-





이거 아주 재밌는 시다
버스운전사와 할머니와 그걸 지켜보는 나...
그 갈등과 소란의 틈바구니에서도
어느 누구도 사달을 내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했다
운전사는 성질난다꼬 버스를 세우지 않았고
할머니는 내 더러버서 내릴란다 카지 않았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소란에도 나는 묵묵히 참아줘따
결론이 나지 않아도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어도
버스는 달린다
제대로 달리고 있는
민주주의 버스다  --   작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