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 반 / 오은

난자기 2017. 6. 19. 10:49




너에게 반을 줄게
나는 나머지 반을 가지면 되니까

나는 반과 반을 합치면 하나가 된다고 생각했다
너는 하나와 하나가 만나면 둘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불완전했고
너는 가득 차 있었다

가뭄과 홍수 사이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했다

채울 것이 간절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증식할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었다

반반이었다

너는 반밖에 안 되어서
반나절 만에 그것을 다 써버렸다

터벅터벅 돌아오는 네 몸뚱이는
반으로 쭈그러들어 있었다
두 눈에는 빛이 있었다
빈 손에는 여지가 있었다
움켜쥘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에게 아직도 반이 남아 있단다

나는 반의 반을 떼어주었다
네가 그것을 떼어먹을 것을 알면서도

반에 반했다가
반에 반(反)해버리 듯이

갈때는 반이면 충분했다가
돌아올 때는 반으론 부족하다는 듯

네 몸뚱이의 반만 보여주고
너는 뒤돌아섰다

반나마 늙을 때까지
너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부풀고자 하는 것의 관성은 대단하므로
갚는 것은 소모를 기억하는 행동이므로

반반이었다

반의 반을 더해도
너는 하나가 되지 않았다 언제나
또 다른 반이 더 필요했다

아무리 반으로 쪼개도
나는 아직 있다
나머지 반이
반의 반이
반의반의 반이

콩알만 해졌다가
팥알만 해졌다가
티끌처럼
손가락으로 집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진 반이

나는 그 반으로 다시 시작할 것이다
태산과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오은, 반의 반-



희망은 합일을 원하는 것이고
욕망은 증식을 원하는 것이구나
그 사이에 어딘가에서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