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난자기 2017. 8. 3. 09:28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라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ㅡ정호승, 나무에 대하여ㅡ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곧음은 직선이다

직선의 처음과 끝은 최단거리로  관통한다

직선은 빠르고 능률적이고 거침이 없다

대나무가 쪼개지는 파죽(破竹)의 지세(之勢)와 고요가 있을 뿐이다

직선에는 사연이 없다

아리랑고개의 애절함도 없다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이 전해주는 이야기도 없다

구름너머 뭉실 떠오르는 달나라 옥토끼의 방아소리도 들을 수 없고

절벽밑 똬리를 틀고 앉아

눈비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고개를 쳐들고 있는 소나무의 고뇌도 없다

이러한 것들은 곡선에서만 가능하다

곡선은 느리고 완만하고 여유가 있다

곡선에는 "美'가 녹아 있다

직선미라는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우리들이 삶도 직행버스가 달리듯 단도직입적이지 않다

시골버스처럼 거쳐야 할 곳은 거치고 쉬어야 할 곳에서 쉬고

버스가 고장나면 고치고, 달리때 달리며,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 자체로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다


-백난작-



-최혜영 / 그것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