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풍경은 상처일 뿐.../ 김훈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통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내 초로初老의 가을에, 상처라는 말은 남세스럽다.
그것을 모르기 않거니와, 내 영세한 필경筆耕은 그 남세스러움을 무릅쓰고 있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 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언어는 마치 쑥과 마늘의 동굴 속에 들어앉은 짐승의 울음처럼 아득히 우원迂遠하여 세계의 계면界面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이 세계가 그 우원한 언어의 외곽 너머로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내 생애의 불우不遇의 풍경이다.
나는 모든 일출과 모든 일몰 앞에서 외로웠고, 뼈마디가 쑤셨다.
나는 시간 속에 내 자신의 존재를 비벼서 확인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몽롱한 언어들이 세계를 끌어들여 내 속으로 밀어넣어주기를 바랐다.
말들은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다.
여기에 묶어내는 몇 줄의 영세한 문장들은 말을 듣지 않는 말들의 투정의 기록이다.
아마도 나는 풍경과 상처 사이에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미망迷妄을 벗어던져야 할 터이다.
그러고 그 미망 속에서 나는 한 줄 한 줄의 문장을 쓸 터이다.
벗들아, 나는 여전히 삼인칭을 주어로 삼는 문장을 만들 수가 없다.
나는 세계의 풍경을 상처로부터 확인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삼인칭의 산맥 속으로, 객관화된 세계 속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일인칭의 가장자리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아마도 오래오래 그러하리라.
1993년 가을에
金薰은 겨우 씀
-김훈 기행산문집 『풍경과 상처』중 서문_ 모든 풍경은 상처일 뿐
현상계는 객관화 되지 못한다
자신의 경험(상처)에 의해 투사된 세계(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내가 만난다는 것은 참 기적같은 일이다
미망迷妄 속에서나마
불완전하게나마
우리가 만남을 지속하는 이유는
공감을 위해서가 아니다
해독하기 어려운 암구호 같은 말의 향연이 펼쳐지는
술자리,
시선은 앞에 앉은 사람에게 향해있지 않고 휑하다
우리는 어쩌면
너는 너의 창을,
나는 나의 창을,
각자가 밖을 내다보는 방식을
서로에게 강요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누구도
단 한번도
창을 깨뜨려 버릴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박작당, 현상계 탐험 가이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