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 조말선

난자기 2017. 9. 13. 10:46

벗어놓은 외투가
고향처럼 떨어져 있다
내가
빠져나간 이후에
그것은
고향이 되었다
오늘 껴입은 외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면
한 번 이상
내가
포근하게
안긴 적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벗어놓은 외투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빠져나가자
그것은 공간이 되었다
후줄근한 중고품
더 이상
그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의 언어

ㅡ조말선, 고향ㅡ

사람들은 역사를 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정주민의 관점에서, 국가라는 단일장치의 이름으로, 아니면 적어도 있을 법한 국가 장치의 이름으로 역사를 썼다.
심지어는 유목민에 대해 말할 때조차도 그런 식이었다

-들뢰즈, 천개의 고원 中-


고향...
고향에 남은자와
떠나온 자의 차이는
저 시에서 보면
외투를 입고 있는 자와
벗은 자의 그것이다
고향은 남은 자에게는 고향이 아닌 것이다
늘 입고 있던 외투처럼 아무렇지도 않다
혹은 지긋지긋한 현실일 수도 있겠다
떠나와 유목생활을 하던 자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자신만의 노스텔지어에 휩싸여
고향의 그 무심함에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후즐근한 중고품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속에는 정겨웠던 옛사람의 언어는
더 이상 없다

정주민들이 그들만의 역사를 쓰고 있는 곳,  고향....


- 박작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