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십이월 / 유강희
난자기
2017. 12. 5. 11:05
십이월이 되면
가슴속에서
왕겨 부비는 소리가 난다
빈집에 오래 갇혀 있던
맷돌이 눈을 뜬다
외출하고 싶은 기미를 들킨다
먼 하늘에서 흰 귀때기들이
소의 눈망울을 핥듯
서나서나 내려온다
지팡이도 없이
십이월의 나무들은
마을 옆에
지팡이처럼 서 있다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십이월이 되면
가슴 속에서
왕겨 타는 소리가 나고
누구에게나
오래된 슬픔의 빈 솥 하나
있음을 안다
ㅡ유강희, 십이월ㅡ
껍질이여,
알곡이 떠난 자리
누구를
따뜻하게 덥힐건가?
십이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