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독 / 이문재

난자기 2017. 12. 11. 13:10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문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속으로 들어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한 죄

ㅡ이문재, 노독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