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 황지우

난자기 2017. 12. 30. 23:31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뒤편 미루나무 숲으로
가시에 긁히며 들어가는 저녁 해;
누가 세상에서 자기 이외의 것을 위해 울고 있을까
해질녘 방바닥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는 자도 있으나
이제 얼마나 남았을꼬
아마 숨이 꼴깍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직 좀더 남았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망년회라고 나가보면 이제 이곳에 주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동창 수첩엔, 벌써 정말로 졸업해버린 놈들이 꽤 된다
배 나오고 머리 빠진 자들이
소싯적같이 용개치던 일로 깔깔대고 있는 것도
아슬아슬한 요행일 터이지만
그 속된 웃음이 떠 있는 더운 허공이 삶의 특권이리라
의사 하는 놈이,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해도
줄창 피우듯이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잊는다 


망년/ 황지우 

-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