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정 / 박목월
난자기
2018. 1. 19. 12:30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하는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슬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ㅡ박목월, 가정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