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쓸쓸함의 비결 / 박형권
난자기
2019. 1. 18. 18:18
어제 잠깐 동네를 걷다가
쓸쓸한 노인이
아무 뜻 없이 봉창문을
여는 걸 보았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내 발자국 소리를
사그락 사그락
눈 내리는 소리로 들은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문 밖과 문 안의 적요가
소문처럼 만났다
적요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탱탱하여서 느슨할 뿐
안과 밖의 소문은
노인과 내가 귀에 익어서
조금 알지만
그 사이에 놓인 경계는
너무나 광대하여
그저 문풍지 한 장의
두께라고 할 밖에
문고리에 잠깐 머물렀던 짧은 소란함으로
밤은 밤새 눈을 뿌렸다
어제 오늘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관하여
나직나직하게 설명하는
저 마을 끝 첫 집의 지붕
나는 이제 기침소리조차
질서 있게 낼 만큼
마을 풍경 속의 한 획이 되었다
나도 쓸쓸한 노인처럼
아무 뜻 없이 문 여는 비결을
터득할 때가 되었다
실은 어제 밤새워 문고리가 달그락거렸다
문고리에 손 올리고 싶어서
나는 문을 열었다
ㅡ박형권, 쓸쓸함의 비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