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로의 초대 / 조정권

난자기 2019. 4. 10. 00:10

잔디는 그냥 밟고
마당으로 들어오세요
열쇠는 현관문 손잡이 위쪽
담쟁이 넝쿨로 덮인
돌벽 틈새를 더듬어 보시구요
키를 꽂기 전
조그맣게 노크하셔야 합니다
적막이
옷매무새라도 고치고
마중 나올 수 있게
대접할만한 건 없지만
벽난로 옆을 보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장작이 보일 거예요 그 옆에는
낡았지만 아주 오래된 흔들의자
찬장에는 옛 그리스 문양이
새겨진 그릇들
달빛과 모기와 먼지들이
소찬을 벌인 지도
오래 되었답니다
방마다 문을, 커튼을,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쉬세요 쉬세요 쉬세요
이 집에서는
바람에 날려 온 가랑잎도 손님이랍니다
많은 집에 초대를 해봤지만
나는
문간에 서 있는 나를
下人처럼 정중하게
마중 나가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 무거운 머리는
이리 주시고요
그 헐벗은 두 손도.

ㅡ조정권, 고요로의 초대ㅡ


 

※※※※

色의
무한한
상상과 가능성은
無色일 때다.
경계의 色또한 그러하다.
모든 빛깔을 담아내는
無色이다.

무무아침!


-[작자기] [오전 3:59]-


댓글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