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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몸과 마음 쑤시는 날 시를 덮고 모란시장에 가네 찰찰 넘치는 삶의 비린내 속 황구처럼 어슬렁거리다가 오일장 한구석 푸성귀 더미 위에 부려진 내 그림자를 바라보네 바람에 쓸려 헐렁해진 하루도 파릇파릇 봄 잔치에 섞이니 장딴지에 슬며시 물이 오르고 겨드랑이가 간지럽네 알타리무, 돌미나리 좌판을 벌인 노파의 손등에 파종하듯 뿌려지는 햇살 검버섯 돋은 세월의 강 건너 염소를 몰고 장닭을 몰고 지상의 낮은 사랑을 몰고 오네 오백 냥이오, 천 냥이오 변방의 수수 많은 소리들 서로 뿌리를 대고 힘을 보태는 저 구릿빛 건강한 외침이 등 푸른 삶의 싹을 틔우는가 罷場, 모란 잎 같은 꿈을 접는 어깨..
먼 세계 이 세계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먼 세계 이 세계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먼 세계 이 세계(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불교가 지나가고道家가 지나간다)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ㅡ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ㅡ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러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
죽음을 건너온 사내가통속한 소설 한 모퉁이로 걸어 들어가밤의 카페에 날아든 나비의 꿈을들여다 보다가날개가 하얀 나비가 되었다어둠으로 지워지는풍경이란생각이 생각을 덮어올때살아남는 아픔들어둠은 어둠으로 자연스럽고빛은 그 가장자리에잠시 머물뿐소멸, 그 이후에는시간을 꺼두고서둘러사랑을 연습해야 했다
강물이 그치고거북등처럼 바닥이 갈라진다이제 다시 물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검은머리물새떼는 알고 있다버려진 목선이 저마다의 기슭에서 낡아간다푸른 강이었던 나는떠나가는 것들을 무심히 바라보며천변에 우두커니 서 있다오래된 강의 기억이 갈대숲에 숨어 흐른다뿌연 달빛이 물그림자를 그리고마지막 남은 검은머리물새가푸드득 날아 올라 버드나무가지에 앉았다빈 강은 속으로 텅텅 운다나는 언제나 푸른 강이어야 하므로다시 젖어들 강의 자태로 홀로비어가야 하기에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빈자리가 필요하다질서도 문화도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빈자리가 필요하다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빈자리가 필요하고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빈자리가 필요하다친구들이여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ㅡ오규원, 빈자리가 필요하다ㅡ
사람이 틈이 없으면 차가운 벽과 같단다빈틈이 있어야실바람과 햇볕이 조금씩 들어가삶이 꽃과 식물들로 풍성해진단다그 틈이 문이 되어사람들이 들랑날랑한단다작은 틈이라도 있어야꽃길 진흙길 걸어온 사람들과도 어깨동무할 수 있단다조그마한 틈마저 꽁꽁 막아버리면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버린단다빈틈은 사람이 가진 향기란다ㅡ권영하, 빈틈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