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임경섭, 처음의 맛 ㅡ 본문

임경섭, 처음의 맛 ㅡ

난자기 2020. 7. 31. 18:43
해가 지는 곳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무가 움직이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담근 김치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해
형이 슬퍼한 밤이었다

김치는 써는 소리마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고
형이 말했지만
나는 도무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는 밤이었다

창문이 있는 곳에서
어둠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달이 떠 있어야 할 곳엔
이미 구름이 한창이었다

모두가 돌아오는 곳에서
모두가 돌아오진 않았다

 

ㅡ임경섭, 처음의 맛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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