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김명수, 입추무렵 ㅡ 본문
길에는 사람들이 먹고 버린
여름과일 껍질들이
아직 그대로 남았고
또한 우리들이 먹고 버린
청량음료병들도 뒹군다
입추 무렵 되새겨보노니
지난 여름은 무더웠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선선하다
바람이 불면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흔들리고
이 도시를 둘러싼 먼산들도
멀리서 뚜렷하게 바라보인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그러나 오늘 저녁은 선선하다
바람이 불면 키우던 집의
개도 털이 흔들리고
개는 한곳에서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기다렸던 것은
이런 선선함인가
이런 날에는
우리들의 생은
더욱 외로워진다
우리들의 생은
더욱 쓸쓸해진다
도시의 뒷골목을 혼자 걷다가
우두커니 옥상에 혼자 서봐도
우리가
정녕 잊어버리려 했던 것은
지난 여름의 무더위만이
아니었던 것을 깨닫는다
이런 날에는
아침 저녁으로
바람은 선선하고
서녘하늘에
구름만 높아졌다
ㅡ김명수, 입추무렵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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