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세한도 / 박현수 본문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크러진 삶을 쓸어 올리며 나는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속에서
푸르른 혈죽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나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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