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댓병 소주 본문
이른 봄날 모처럼 시골집 마루에
일없이 걸터앉아
햇빛 쬐며 다리 건덩거리다
뜬금없이
한 생의 보람을 물으니
마루 구석에 놓인
반쯤 남은 댓병 소주가 말을 받는다
보람은 무슨 보람
낮이면 저 해님 백성으로 일하고
밤이면 달님 품에 안겨 자는 게 일이지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은 많으나
얼마나 이루기 어렵던가
또한 어렵사리 이루어도 보람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나니
남는 것이 그 무엇이던가
가장 쉬운 일은 술 한 잔 하면서
스스로를 섬기는 일뿐
자족하고
자식들 건사나 하며
한 생애 바람찬 여울을 건너나니
보람은 무슨 보람
이제는 일없네
철없는 짓 그만두고
모처럼 한가하니
김치쪼가리에 낮술 한 잔 하시게나
ㅡ윤재철, 댓병 소주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