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영랑호에서 본문
바위가 그물을 입었다
호박 덩굴이 걸려든다
덩굴이 걸려들자
간지러워 못 참겠다는 듯
노란 호박꽃들 다투어 핀다
꿈속 피붙이 만나듯
그 길로 산책 나간다
원고지 같은 그물 입고 있는
바위에 걸려든 것
그물을 잡고 기어오르는 덩굴손에
걸려든 것
귀청을 찢는 매미 울음 멎고 매미들
다 어디 갔나 궁금할 즈음
덩굴손 한창일 땐 보이지 않던
가파른 벼랑 끝 칸과 칸 사이
커다란 적멸보궁 한 채
붕붕거리는 입들이
드나들던 꽃 한 송이
적멸보궁이 될 때까지
바위의 정수리는
또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무수한 내일의 꽃들
펼쳐질 수많은 웃음과 염원들
절벽 위에 있다
ㅡ박홍점, 영랑호에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