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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본문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난자기 2024. 10. 28. 11:16

그 무렵 잠에서 나 배웠네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복록을 찾기엔 
너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을, 
잠의 해안에 배 한 척
슬그머니 풀려나 
때때로 부두를 드나들 때에
내게 病은 높은 것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것 때문이었다네
유리창에 나무 그림자가 물들고 
노을이 쓰르라미 소리로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이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ㅡ박주택,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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