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용병이야기 / 김종철 본문
그날 우리는 짐을 싸면서도 용병인 줄 몰랐다. 끗발이나 빽도 없는, 대가리 싹뚝 민 개망초 보병들이다. 야간 군용 트럭으로 잠입한 오음리 특수훈련장, 이른 기상나팔에 물구나무 선 참나무, 소나무, 굴참나무. 아침 점호에 같이 고향을 본 후 힘차게 몇 개의 산을 넘었다. 이빨까지 덜덜거리는 상반신 겨울, 주는 대로 먹고, 찌르고, 던지고, 복종하는 훈련병. 정곡을 찌르는 기합에, 겨울 새떼들은 숨죽이며 날아올랐다. 하루 일당 1달러 80센트에 펄럭이는 성조기, 우리는 조국의 이름으로 낮은 포복을 하였다.*
오음리의 겨울은 이제 누구도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생선에게 고양이를 맡기든 말든 죽은 시인도 죽은 척할 뿐이다.
- 시집 『못』(문학수첩, 2013)
"우리는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관습을 배 밖으로 던져버렸다. 우리의 유일한 지침원리는 필연적 논리의 원리다.
우리는 윤리라는 바닥짐 없이 항해하고 있다. 아마도 악의 중심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에게 윤리라는 바닥짐 없이 항해하는 것은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성하나만으로 만들어진 나침반은 불완전하기에 목표가 안개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뒤틀린 경로로 이끌것이다"
쾨슬러 <한낮의 어둠중에서>
이성지상주의에서는 흔히 바다로 가던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비단 베트남전쟁 뿐 아니라 역사는 수많은 사건들로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심지어 그것들은 조작하고 미화하여 자신들의 나침반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고장난 나침반으로는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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