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자급자족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경아 ㅡ 본문
신개념 자급자족의 삶
자급자족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우리는 우리의 먹을거리, 입을거리, 주거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다. 세익스피어의 아내, 앤 헤더웨이의 생가.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놓고 있다.
자급자족의 삶
인간의 삶이 지금과 같이 분업화되기 전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먹고 입을거리, 살 집을 해결하며 살아왔다. 이른바 자급자족의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일생 동안 하는 일이 한두 가지로 집중된 채, 다른 이가 생산한 식료품과 의류, 공업용품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삶에 대한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 진정 우리는 질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1990년대를 기점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아직은 소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진 삶’ 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하거나 혹은 좀 더 적극적으로는 신자급자족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新자급자족’이라는 명칭이 붙는 이유는 단순히 ‘옛날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보다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으로 “좀더 질 높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환경을 헤치지 않는 입을거리를 만들고,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식의 집을 짓자”는 것으로 집약이 된다.
존 시모어의 신자급자족
현대적 개념의 자급자족의 삶을 제안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많다. 그 가운데에는 영국인 존 시모어John Seymour(1914-2004)도 있다. 그는 1976년 책을 출판했는데 책 속에는 삶의 방식을 파격적으로 바꾼 그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시모어는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뒤, 20대 시절 7년 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경험한다. 아프리카에서 양 떼를 돌보는 수의사로 지내며 그곳의 부시맨들 삶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세계 1,2차 대전 중에는 전쟁에 대한 혐오로 다시 케냐에서 생활을 했고,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방송 프로듀서로 일을 하면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다수 제작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직업이었던 방송일과 런던이라는 도시 속의 삶을 돌연 중단하고 시골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는 우리 삶의 방식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생각에 질적으로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시도는 우리 삶을 좀 더 단순하게, 행복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 삶의 행복은 좋은 가정을 만드는 것, 지역에서 쉽게 생산하고 구할 수 있는 질 좋은 음식을 먹고, 편안한 옷을 입고, 편리하고 따뜻한 집을 만들고, 가정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도시 전체가 자급자족의 삶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쿠바 하바나의 농장.
문화에 대한 중요성
존 시모어가 주장한 신자급자족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 막연한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라 그 실행 속에서 자급자족의 삶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 존 시모어의 딸, 앤 씨어스Anne Sears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듯 하다. 앤은 존 시모어가 아흔 살의 나이로 죽은 뒤 아버지의 책을 재출판하며 이런 서문을 남겼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급자족 삶의 방식 속에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우리 형제는 가축을 돌보고, 우유를 짜고, 버터와 치즈 만드는 일을 도왔다. 양떼를 몰고, 농작물을 수확하고, 저장하는 일은 어른과 똑같이 했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농장의 일이 바쁠 때면 밀린 학교 숙제를 늦은 밤까지 해야 했다. 저녁 식사에는 사람들이 늘 초대 되곤 했는데 우리는 이들과 음식을 나누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내 머리 속에 행복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저녁의 풍경이다.
시모어는 힘겹고 불편했던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진화된 자급자족, 우리가 사는 동안 더 행복할 수 있는 방식을 찾자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자급자족의 삶이란 막연한 상상이나 기대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1)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하고, 할 수 없는 부분은 이웃과 나누자.
2) 자연적 삶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잔인하기도 하고 고된 노동과 강인한 정신력을 요한다.
3) 만족의 기준을 바꾸자. 만족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서 얻어진다.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하고 이것이 곧 만족이다.
4) 자급자족의 삶은 길고 멀다. 처음 발을 떼고 내 몸에 완전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림을 잊지 말자.
신자급자족의 삶은 나 혼자가 아니라 주변의 이웃과 함께 나누고 교환하는 삶을 권한다. 자급자족의 삶은 식료품의 먼거리 유통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두 마을의 교훈
그리스 크레타 섬의 실화다. 이곳에는 두 마을이 있었다. 두 마을은 모두 산 속 깊은 곳에 있어서 주변과의 왕래가 힘들었고, 이들의 유일한 소통은 수십 킬로미터의 산을 내려와 시장에서 자신이 키운 농산물을 생선, 고기로 교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중 한 마을은 아직도 옛날 방식의 삶을 이어간다. 큰 길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자동차의 왕래가 힘들어 대부분은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마을 길을 다닌다. 물론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밤이면 사람들이 음식과 술을 나누고 노래와 춤을 추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마을은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힘을 합해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함께 나누며 산다.
반면 비슷한 처지의 다른 마을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길을 내고, 빠르게 도시의 삶을 받아들였다. 슈퍼가 생기고 현대적인 쇼핑 상점도 속속 생겨났다. 마을에서는 모든 농산물을 직접 키우던 방식을 버리고 수입이 보장된 올리브 생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올리브 농사는 작황이 좋을 때는 괜찮았지만 기후 변화 등의 변수로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사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게다가 마을의 젊은이들은 농촌의 삶에 실증을 내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더 큰 도시로 나가기를 원했고, 결국 마을은 이제 나이든 어른들만이 남아 힘겨운 올리브 농사의 노동을 견딜 뿐, 이전에 이웃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여흥을 즐겼던 문화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위 사례는 조금은 극단적이고 삶의 행복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나에 따라 변수가 많은 비유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두 마을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런 식으로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뭔가 생각할 점을 남긴다.
자급자족의 삶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유통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이용해 좀 더 자연 친화적으로 사는 삶을 추구한다. 말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는 쿠바의 농부(좌)와 나뭇잎으로 만든 소쿠리를 파는 시장의 모습.
에너지, 교통, 일, 가정, 음식의 변화
자급자족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우선 가장 큰 영향으로 에너지의 절약을 꼽는다. 도시는 이제 열섬 현상으로 여름이면 극심한 무더위를, 겨울이면 높은 빌딩 그늘로 인해 추위가 매섭다. 그만큼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의 소비가 더욱 늘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급자족의 삶에서는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태양열·지열 등의 대체 에너지 사용을 권한다. 더불어 생활의 규모를 줄이는 것도 필수적이다. 지나치게 큰 주택은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의 삶은 교통비에 대한 부담을 줄인다. 물류를 이동시키는 일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소비 중 하나다. 스스로 자급을 하는 상황 혹은 적어도 인근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삶은 도로의 개설비용이나 차량 운행 비용, 에너지 소비 등의 측면에서 큰 손실을 줄이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나타난다. 지금의 우리는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처럼 나에게 할당된 제한된 일을 통해 이른바 급여를 받고, 그 급여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달라 누군가는 노동의 양보다 훨씬 더 낮은 가치를 얻기도 한다. 우리 삶이 결국 잘 먹고, 자고, 입고, 생활하는 것에 있다면 내 노동으로 내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자급자족의 삶이 추구하는 바이다.
자급자족의 삶 속에서는 가정의 삶이 더욱 중요해진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일하고, 무엇보다 가족과의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음식의 변화 또한 큰 요소다. 음식의 재료는 우리의 건강과 바로 직결이 된다. 내 손으로 키운 채소와 과일, 내가 기른 가축, 달걀 등으로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 몸이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생활의 변화와 정원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전통 주거 환경을 잃었고, 경제 부흥이라는 당면 과제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많은 요인으로 인해 아파트라는 주거문화를 매우 급진적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50 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공동 주택에서의 삶에 답답함과 부작용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주거환경과 삶의 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급자족주의자들의 주장에 아무리 고개가 끄덕여져도 지금 당장의 삶을 중단하고 시골의 삶, 자급자족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삶 속에 우리가 언제부터 지금의 방식으로 살고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달라질 수 있다. 이 지구 속에 인간의 삶이 시작된 것도 정말 최근의 일이다. 나아가 인류의 삶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더욱 최근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진심으로 결정한다면 서서히 작은 변화가 일어나 언젠가 우리 삶을 크게 바꿔놓지 않을까? 그래서 정원도 우리 삶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화되고 있는 중이라는 걸 믿게 된다.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 주거와 편리한 현대적 삶의 방식을 융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디자인의 발견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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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작가
글쓴이 오경아는 16년 간의 방송작가 활동을 접고 2005년 영국으로 가든 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The University of Essex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친 뒤,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조경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2012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는 <오가든스>라는 정원관련 종합회사를 설립해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속초에서 정원학교를 운영중이다.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정원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의 저자이며, 정원을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개념 자급자족의 삶 - 자급자족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원이 정말 사라지고 있을까, 오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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