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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묘지1 / 조정권 본문

경제

산정묘지1 / 조정권

난자기 2016. 5. 11. 12:33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의 누각을 꿈꾸어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의 일각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에 서는 것
그러나
한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ㅡ조정권, 산정묘지1 ㅡ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좌초한 인간들.

가닿을 수 없는 높이를 강인하게 추구하다가
한기(寒氣)를 끌어 모아 서리를 뱉어내는 겨울 땅에
결국은 드러눕는 인간들.

언젠가 이른 봄 그대들이 찾아낸 새파란 무덤 하나

그대를 향해 왈칵 달려드는 풀내음
그것이 우리가 끝까지 살아야 했던 이유이다.


조정권, 산정묘지 19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