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배롱나무 아래서 본문

배롱나무 아래서

난자기 2025. 8. 7. 10:10

어제 피운 바람꽃 진다
팔월염천 사르는 농염한 꽃불
밤 사이 시들시들 검붉게 져도
또다른 망울에 불을 지핀다
언제쯤 철이 들까? 내내
자잘한 웃음소리 간드러지는
늙은 배롱나무의 선홍빛 음순
날아든 꿀벌을 깊이 품고 뜨겁다
조금 사리 지나고 막달이 차도
좀처럼 下血이 멎지 않는 꽃이다
호시절을 배롱배롱 보낸 멀미로
팔다리 휘도록 늦바람난 꽃이여
매미도 목이 쉬어 타는 말복에
생피같이 더운 네 웃음 보시한들
보릿고개 맨발로 넘다가 지친
내 몸이 받는 한끼 이밥만 하랴
해도, 오랜 기갈을 견뎌온 나는
석달 열흘 피고 지는 현란한 修辭
네 새빨간 거짓말도 다 믿고 싶다
그 쓰린 기억 뒤로 가을이 오고
퍼렇게 침묵하던 벼이삭은 패리라
처서 지나 한로쯤 찬이슬 맞고
햇곡도 다 익어 제 무게로 숙일 때
나는 또 한 소식을 기다려보리라
보름 넘어 굶다가 밥상을 받듯
받기 전에 배부른 배롱나무 아래서

ㅡ임영조, 배롱나무 아래서 ㅡ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쌍칼이라 불러다오  (2) 2025.08.14
소나기  (3) 2025.08.12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5) 2025.08.05
바람이 불면  (1) 2025.08.01
기우  (0) 202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