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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화학식 / 성윤석

난자기 2016. 2. 3. 14:26

       



              술의 화학식ㅡ성윤석






1.
저녁이다. 그냥 저녁, 영원한 저녁이다. 해를 따라가서
같이 저물어 버리고 싶은 저녁이다.
굳이 쓰자면,
술은 C2H5OH
산소와 수소가 부둥켜안고 있는 집에 탄소가 와서 같이
엉겨 수소는 5개가 더 늘어나고 탄소는 도플갱어 하나가
더 분리된 이야기.

2.
취하는구나
술은 들어오고, 들어가서
물을 녹이고 기름을 녹이고
내 몸속을 돌아다니는 오토바이 한 대를
서서히 녹이는구나.
급발진하고 싶은 1단 기어
내 썩어 가는 오토바이를 나는
보고만 있구나.
백미러 한 개가 녹고
기름통 뚜껑이 녹고 있구나.

3.
저녁이다. 밤무대마저 거절당한 삼류 가수의
심정이 자꾸만 생각나서, 그 심경이 폐를 뒤적이며
다시 뒤적이는 저녁이다. 먼저 가서 먼저 울기 위해
새들은 바다로, 날아가고
우와아아 저녁이다. 그냥 저녁. 저녁으로 들어가
저녁에서만 살고 싶은 저녁이다.

4.
한번 들어가자. 애인아. 한번 들어가면
술잔이 계속 늘어나서, 술잔이 계속 늘어서서
되돌아 나올 수도 없고, 나가려 하지도 않는
그런 생의 술집이 있을까마는
술은 아직도 내 몸속에 서 있는
눈사람을 다 녹여 먹고
내가 아닌 술이 사람 되어
우는구나, 나가라, 하지도 않고
더 있을 수도 없는 생의 그런 술집이 있을까마는
내가 아는 먼 마을에 눈이 그치듯
술이 술을 더하고 불러내,
당신의 눈빛마저 다 녹여 먹기 전까지는

애인아. 한번 가자.
네가 다시 눈을 뜨듯 이 저녁 첫 등을 켠
저 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