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방파제 끝 / 황동규 본문

방파제 끝 / 황동규

난자기 2016. 4. 13. 14:04

언젠가
마음 더 챙기지 말고
꺼내놓을 자리는
방파제 끝이 되리
앞에 노는 섬도 없고
헤픈 구름장도 없는 곳
오가는 배 두어 척
제 갈 데로 가고
물 자국만
잠시 눈 깜박이며
출렁이다 지워지는 곳
동해안
어느 조그만 어항
소금기
질척한 골목을 지나
생선들 함께
모로 누워 잠든
어둑한 어물전들을 지나
바다로 나가다
걸음 멈춘 방파제
환한 그 끝

ㅡ방파제 끝ㅡ


그물,
끈들이 지워진다

나를 이끄는

끝!  ...작작이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 풍장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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