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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는 쪽으로 / 이정록 본문

해 지는 쪽으로 / 이정록

난자기 2017. 4. 3. 06:47




햇살동냥하지 말라고
밭둑을 따라
한 줄만 심었지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

나는 꼭,
그 녀석으로
종자를 삼는다네

벗 그림자로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르는 까만 눈동자,
속눈썹이 젖어 있네

머리통 여물 때면
어김없이
또다시 고개 돌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겨나지
그늘 막대가
가르키는 쪽을
나도
매일 바라본다네

해마다 나는,
석양으로 눈길 다진
그 녀석으로
종자를 삼는다네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ㅡ이정록,
해 지는 쪽으로ㅡ





해바라기를 향일화()라고도 한다

해를 따라 도는 꽃이라는 뜻이다

해는 매일 동족에서 서쪽으로 기울며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다음날 어김없이 동쪽에서 새벽을 열어준다

이러한 무한한 반복이 시간이다

우리는 이러한 무한성속에서의 유한의 존재이다

유한의 끝없는 반복이 무한이라고 본다면

유한의 존재라도 그리 덧없거나 처량하고 애닳아 할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무차별적이어서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거침없이 내 달린다

흐르는 시냇물에 바위가 깍여 모래가 되듯이

시간에 침식되어 언젠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시간에 매 달리게 한다


해지는 쪽으로 고객를 숙이는 해바라기를

종자로 삼아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시간에 깍여 지나간  과거는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속에 담겨져 있어 꺼내 놓지 않았을 뿐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상기하고 회상하는 능력이 있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시간들의 조각을 현재에 풀어 놓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지금의 모래알을 모아서 다시 온전한 바위로 복원시킬 수 있는 힘이다


벗 그림자로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르는 까만 눈동자,
속눈썹이 젖어 있네




회상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벗 그림자에 눈물 짓게하는 아련함

과거를 통해 자신을 추억하고

성찰하고 반성하고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귀한 종자로 삼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 일수도 있다


그늘 막대가
가르키는 쪽을
나도
매일 바라본다네..




- 백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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