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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 김진경 본문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 김진경

난자기 2017. 7. 3. 11:28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벗이여, 형제여, 사랑하는 사람이여 어서 오게나
지금은 우리가 고통으로 서로를 아는 때
지금은 우리가 상처로 서로를 확인하는 때
지금은 우리가
가슴에 박힌 가시철조망으로 서로를 부르고
흐르는 피로 끈끈하게 하나가 되는 때
형제여, 그러니 어서 오게나
이제 밤은 너무도 깊어
우리 살아 있음의 표지조차 어둠 깊이 사라져 가고
이제 고통만이 살아 있음의 유일한 척도이어라
오게나
이 밤엔 고통도 성스러워라
그것이 이 어둠을 건너
우리를 부활하게 하리니
첫새벽에 그것이
우리의 빛나는 보석임을 알게 되리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형제여
어서 오게나
그대 움푹 패인 수갑 자국 그대로
그대 고통에 패인 주름살 그대로
우리 어떠한 것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오직 서로에게 고개 숙여 서로의 상처에 입 맞추느니
이 밤엔 고통만이 성스러워라
어서 오게나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을 건너
우리를 부활하게 하리니

김진경,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로에게 고통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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