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폐광촌을 지나며 / 이건청 본문
고한읍 어딘가에
고래가 산다는 걸
나는 몰랐다
까아맣게 몰랐다
'사북사태' 때도
그냥 어용노조만
거기 있는 줄 알았다
혹등고래가 산 속에 숨어
탄맥을 쌓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막장인줄만 알았다
푸슬푸슬 내리는 눈발이
아이들도 개도 지우고 유리창도 깨진 사택들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고래가 사는 줄은 몰랐다
역전 주점,
시뻘겋게 타오르는 조개탄 난로의그것을불인줄만 알았다
카지노 아랫마을
찌그러진 주점에서
소주잔을 들어올리는
사람들의 한숨인 줄만 알았다
검은 탄더미인 줄만 알았다
그냥 석탄인 줄만 알았다
ㅡ이건청, 폐광촌을 지나며ㅡ
그래,
분명히
검은 고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