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프랑스와즈 사강 비판 / 작당이 본문
붉은 재규어와 위스키를 좋아했던 스피드광 사강.
스물 한 살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 했다가 기사회생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한 법정진술에는
사강다운 멋이 있습니다.
[작당이]
프랑스와즈 사강이 말하기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작당이]
근데 여기서 한가지 따져봐야 할 점은
사강이 말하는 나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자체로 나일 수 있는 존재인가
야훼가 자신을 말하기를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했는데
논리적이지 않는 정의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는 자기가 존재하는 지 여부를 스스로 알 수가 없다
의식은 대상을 향해 있을 때만 의식으로서의 자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외부의 대상이 전혀 존재치 않는 상황에서는 의식이 발동되지 않는다
나의 존재는 타자의 도움 없이는 인식될 수 없다
나는 자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의존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계적 자아로서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타자(딱히 인간으로 한정된 것이 아닌, 사물이나 현상 같은 것을 모두 포함하는)와의 관계가
내 존재성을 좌우한다고 볼 때,
그 타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내 존재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면
단절은 존재의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다
우리가 스스로 정의로울 수 있을까
과연 자기만의 행복이라는 것은 가능한 얘기인가
자기를 파괴하는 행위는 그것이 진정 자기만의 파괴인가
각자의 생각, 각자의 다름이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라는 미명하에
너무도 당당하게 주창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따져보자는 얘기.
박작당, 각작? 오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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