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유동성함정 , 박경철 본문
중앙은행이 돈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현금 개념인 협의통화(M1)다.
M1은 현금통화와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으로 구성돼 인쇄된 종이 돈과 즉각 인출 가능한 돈의 총량을 가리킨다.
둘째는 광의통화(M2)로, M2는 M1에 머니마켓펀드(MMF)와 2년 미만 정기 예적금·금전신탁, 수익증권 등을 포함한다.
M2는 즉각 인출 가능하지만, 약간의 이자를 포기해야 하는 돈이다. 이 둘은 시중에서 ‘돈’이라 부르는 화폐량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이 두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풀린 돈의 양을 살펴보면, 최근 M2 증가량은 6개월째 9%대를 넘어섰고, M1의 경우 전년 대비 무려 20% 이상 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현금이라 할 수 있는 돈의 양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시중 부동자금은 2010년 653조에서 2013년 713조, 2014년에는 795조에서 결국 올해 1월 말에 800조원을 처음 돌파하더니, 이후 8개월 만에 900조원마저 넘어섰다. 유례없는 규모의 돈이 시중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다.
비율로 치면 경제위기 직전인 1996년 이래 가장 심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돈벼락은커녕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돈이 고여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 시중은행에 빌려주는 돈과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돈의 이자를 낮추는 방법이다. 이 경우 은행은 가능한 한 대출을 늘리려 하고 쉽게 대출받은 이들은 빌린 돈을 경제활동에 사용하게 된다.
둘째는 한국은행이 돈을 직접 찍어내는 방법이다. 중앙은행은 발권력이 있으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다. 다만 이때 찍어낸 돈을 헬리콥터로 뿌릴 수는 없어 그 돈으로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사주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한 돈으로 재정에 투입한다. 물론 이 경우 그만큼 정부의 빚이 늘게 된다.
셋째로 한국은행이 찍은 돈을 공적자금으로 투입하는 방식이다. 즉, 국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사서 국책은행이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투입하면 결과적으로 한국은행이 한계기업을 살리는 일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셈이 된다. 물론 전자는 정책이지만, 후자는 모럴헤저드다. 어쨌든 두 경우 모두 통계상 돈이 증가하는 원인이 된다.
그다음은 결과다.
경제학자마다 논란이 분분하지만, 현재 한국의 화폐가치에 이상한 점이 있다. 사상 유례없는 연속 무역흑자가 지속되고 있는데 원화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대개는 미국 달러의 강세를 원인으로 든다. 미국 금리가 상승 조짐을 보이며 개도국의 자금이 이탈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본질을 살펴보면 돈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한국처럼 무역흑자가 지속되면 외화가 유입되고 그것을 원화로 바꾸기 위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원화가치가 증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데 일본도 무역 흑자에도 불구하고 엔화가 약세를 보인다. 그것은 알다시피 아베정부가 엄청난 양의 양적완화를 지속하기 때문이다. 즉, 들어오는 외화보다 찍어내는 자국 통화가 늘어난 결과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그 이유 역시 당연히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양이 많고, 둘째로 돈이 돌지 않아 돈의 공급량이 저수지에 고여있는 탓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의 이상급등은 바로 이것이 원인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이런 상황에 접어들면 위험신호다. 정책당국이 투기로 인한 흥분이 소비를 촉진하고, 그 결과 경제가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순간, 프로포폴을 피로해소제로 부르는 마약중독자들과 같아진다.
냉정히 보면 돈이 늘어나는데 물가는 안정돼 있다. 그럼 미래는 그 돈의 본래 가치를 맞추기 위해 늘어난 거품이 터지든가, 아니면 후에 그만큼 물가가 오르든가 두 가지밖에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고민이다.
박경철의 오딧세이아, 유동성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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