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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 월국여행기 / 박작당

난자기 2018. 12. 20. 16:36



재수 없는 년 시집 가는 날 등창 난다고 무슨 놈의 두통으로 여행 하루 전날 응급실행이란 말인가
부랴부랴 전화 넣고 목소리 들어보니 다행히 한 삼 일은 넘게 살수 있는 목소리라 한 숨 쉬고 퇴근을 서둘렀다
수자기가 저런 꼴이니 난자기의 올라오는 케텍스 차창에도 수심이 어렸겄다
관악역 들러서 작작이 태우고 광명역에서 난작이 인터셉트해서 우리 셋은 수자기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하고 여장을 역 근처에 풀고는 간단히 한잔하러 나섰다
날씨는 초겨울이라 쌀쌀했다
웅크린 우리들 어깨에는 저마다 내일의 남국의 기대가 걸쳐져 있다

어쨌든 입월전야다
무엇의 전야이든 간에 앞둔 밤의 잔 부딪히는 소리는 설레이는 법이다
술자리를 일차로 끝내버리고 싹싹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남아 있는 시간의 넉넉함 때문이리라
작작이 시간되서 뻗고,
남은 난작이랑 양자역학으로 서로 해석이 난해하여 어리둥절한 취중잡담을 까다보니 공항갈 시간이다

여관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그래보아서 그런지 수척해 보이는 수자기가 서있었다
가방 허벌나게 큰거 들고…한손에는 김치보따리까지…

박작당, 오자기월국여행 ㅡ 전야



큰 가방을 들고 나타난 수자기를 퉁박을 주었지만 제수씨의 정성이 그 크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걸 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넘…쓰벌
우리는 새벽을 질러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타고 가면서 자려고 했던 계획은 무산이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중에 작작이의 장이 말썽을 일으킨 모양이다

화장실 들락날락

하늘에서 위를 개워내는 기분은 어떤걸까
위통, 두통, 요통…
삐그덕 거리는 몸들을 저가항공비행기 의자가 힘겹게 받아내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호찌민이다
올만에 보는 미자기 얼굴이 뭉클하다

재회의 반가움도 잠깐이다
곧 젊은 나라 월국의 수도 호찌민의 분주함에 압도되어버리고…

오토바이 홍수 속을 뚫고 도착한 유명하다는 국시 집에서
국시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우리는 월국 체류 이틀간 묵게 될 숙소로 향했다
미자기가 사전답사를 잘한 것 같다
숙소가 깔끔하다
침대가 다섯개다

화장실도 네개나!
찌든 민상들 피러 이발소로 가자

귀파고 코파고 터래기깍고 손톱발톱깍고 나니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향후 베트남 첫 일정은 무조건 이발소부터다
상쾌한 몸과 맘으로 향한 곳은 근처 한식 술집이었다
베트남 처자를 따라 구불구불 계단을 올라가니 아지트 같은 방을 하나 내어준다
술은 맥주가 더 싸네
소주 육천언이마 개안은 가격이다
소주도 묵고 맥주도 묵자
베트남 처자가 난자기 거시기 만한 얼음을 가지고 와서 잔에 담는다
그때 우리는 그 얼음이 거기서만 그렇게 넣어주는 줄만 알았더랬지
술 없어도 분위기 업되는 경험이 생소하다
오랜만의 오작합체 때문이지 이후 벌어질 향연의 기대감 때문인지 우리는 금새 왁자지껄 해졌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젊은 날의 환()이여

박작당, 오자기월국여행기 ㅡ 하루








이국의 밤은 사람을 풀어버린다
멀리 떠나와 있다는 느낌은 떠나온 곳에서 느껴왔던 갑갑함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부추킨다
그 욕구는 욕정으로 현시화된다
딱히 끈적끈적한 그런 것이 아니라도 좋다
그러나 사내들이란 그런 것들이다
베트남의 하룻밤은 이런 정도로 마무리하자

다음날은 호찌민 구경하기….
호찌민은 바야흐로 자본의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있는 도시다

곳곳이 개발 붐에 들썩거리고 있었다
우리도 현재의 베트남처럼 개발독재시절을 겪은 세대다
그리고 그 개발의 결실을 향유한 세대이기도 하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향유는 물질의 풍요에 국한 된 것이었다
풍요는 더 큰 풍요를 요구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우리가 쌓아 올린 재화를 재투자하는 것에만 골몰하였다
풍요가 주는 수혜를 어찌 그런 골몰로만 몰아가게 되었는지는 우리세대가 풀어주고 가야 할 숙제다
먼 훗날 우리 세대를 얘기할 때 이렇게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ㅡ 풍요의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풍요를 누리지 못한 세대 ㅡ
어쨌든 우리는 떡이 커지고 급격히 줄어들고 다시 커지다가 다시 줄어들고를 반복하다 현재는 답보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세대는 총알의 대부분을 소진시켜버렸다
더 이상 끼어들 판이 없다
잘해야 광이나 팔던지 그도 못하면 빌붙어 개평고물이나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베트남은 그런 우리를 타임머신 타듯 그 풍요의 시작점으로 다시 되돌린다
탄손눝공항에 내려서 본 월국의 첫 감상이 ‘윽수로 정겨븐’ 느낌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그때 그 시절이 삼십 년 가량 느리게 흐르고 있는
이 도시의 후진성 때문이리라
개발도상국이라는 말은 이제 막 길 위에 올라선 나라라는 말이다

박작당, 오자기월국여행기 ㅡ 이틀








증발했다고 해야 맞다
우리의 꿈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렸다
구체화 될 수 없는 막연한 모든 것은 막연하게 사라진다
우리는 욕망했으되, 욕망의 실체와 만난 적이 없다
혹은 만났을지도 모른다
성향상 대부분 고개를 돌려버렸을 소지가 많은 만남이었을….
욕망은 비리다
욕망은 추하다
욕망은 디테일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는 젬병이다
우리의 꿈들은 그 갈등의 과정에서 증발해버렸다
그게 구조적 모순 때문인지 개인적 나태인지 그도 아니면 복합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실몽인(失夢人)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것이다
호찌민은 유몽민(有夢民)과 실몽민(失夢民)들의 도시다
비로소 새벽이 열리는 곳이자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꿈을 꾸러 오는 곳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암튼 우리는 오늘 귀환을 해야 한다
호찌민에서는 흔치 않은 태풍이 와서 귀환길이 만만찮을 듯 하다
미자기와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공항에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연착이다
이틀간 흥청망청거린 몸이 무겁다
우리들은 말이 없어졌다
어떤 이의 수필문구처럼 여행의 마지막 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입국하자마자 일상이라는 것도 슬프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불편한 잠을 설치다 얼핏 꿈을 꾼 듯 한데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막연함으로 돌아가는 건가?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출렁거리고 있다

박작당, 오자기월국여행기 ㅡ 그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