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바람 불어 아픈 날 /이승희 본문
온몸이 뭉툭한 바위가 있다
수억년 불길에도 살아 남았지만
그 불의 내력에 들지 못한 삶은 오로지 깎이고 깨지면서만
살아야 하는 생이 되었다
날 선 칼에는 미동도 않더니
제 밑을 파고든 여린 풀들에게는
제 몸을 기울여
순순히 자리를 내주는
코 뭉툭한 바위
누님 만나러 벽제 가는 길에
바위에 앉았다
바위 속에서 쓰아악 대숲의
바람이 불기도 하는 것이
수천년 수도의 공력이 절정이다
바위에 앉아서 보면,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얼마나 안쓰러운가,
또 얼마나 늠름한가
ㅡ이승희, 바람 불어 아픈 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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