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box1, 정연홍ㅡ 본문

box1, 정연홍ㅡ

난자기 2020. 10. 12. 17:28
온다
사과 box 감자 box
상추 box 라면 box
하루 8시간 내리고 쌓는 것이
나의 업무
네모난 box
둥근 box는 왜 없는 거지
box 51개를 옮기고
생각에 잠긴다
유빙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box
입이 없는 box
사방이 절벽인 box
손으로 들어야 하는 box
허리에 힘을 주고
어이쌰
진열대에 올리고 또
올리고
근육이 box를 받쳐 들어 올리면
관절이 box를 받아서 놓는다
인간미가 필요 없는 box
트럭에서 하치되는 box
매일매일 내 앞에 쌓이는 box
지금 box도 나 같은 box쟁이가
놓고 갔을 것
그도 지금쯤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있을 것
각진 box
곡선의 유연함이 없다
거리엔 사각형 box가 달리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사각형
box에서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얼굴이 자꾸
사각형을 닮아 간다
ㅡ정연홍, box1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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