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정신과 병동 / 마종기 본문
비 오는 가을 오후에
정신과 병동은 서 있다
지금 봄이지요,
봄 다음엔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엔 도둑놈이 옵니다
몇 살이냐고요? 오백두 살입니다
내 색시는 스물 한 명이지요
고시를 공부하다 지쳐버린
튼튼한 이 청년은 서 있다
죽어가는 나무가 웃는다
글쎄, 바그너의 작풍이 문제라니
내가 웃고 말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정신과 병동은 구석마다
원시의 이끼가 자란다
나르시스의 수면이
비에 젖어 반짝인다
이제 모두들 돌아왔습니다
추상을 하다, 추상을 하다
추상이 되어버린 미술 학도,
온종일 백지만 보면서
지겹지 않고,
가운 입은 피에로는
비 오는 것만 쓸쓸하다
이제 모두들 깨어났습니다
ㅡ마종기, 정신과 병동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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