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낯선편지 /나희덕 본문
오래된 짐꾸러미에서 나온
네 빛바랜 편지를
나는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다
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
사랑이 발명한 두 사람만의 언어를
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
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해도
나는
이제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 없다
마른 포도나무 가지처럼
내게는
더 이상 너의 피가 돌지 않고
온몸이 눈이거나
온몸이 귀가 되어도
읽을 수 없다
오래된 짐꾸러미 속으로
네 편지를 다시 집어넣는 순간
나는 듣고 말았다
검은 포도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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